유관순(17세)열사의 구치소 모습
§ 유관순 열사가 역사 교과서 에서 빠지다니 §
1919년 3.1운동이 일어나자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다니던 유관순은 결사대를 조직하여 독립만
세 운동에 참여하였다. 3월10일 모든학교에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인 충남 병천에 내려가 동지를 규
합하고 3월31일 저녁 병천 매봉산에 올라가 휏불을 높이 올렸다.
유괸순은 4월1일 아우네 장터에서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였다.일본
헌병들은 평화시위를 하는 군중들에게 총을 쏘아댔다.이날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한 19명이 죽고 유
관순은 체포 되었다.
17세의 유관순 열사는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끝까지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손톱밑을 찌르는 고문^!^
손톱이 뽑히는 그 아픔^!^ 다리가 부러지는 고문을 받으면서도~ 대한민국 독립만세를쉬지않고 부른
죄로 징역 7년형을 언도 받았다.
유관순 열사는 복역중에도 쉬지않고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일본 헌병이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 서
대문 형무소에서 육시처참을 했다.1920년 9월28일 순국했다.이런 대한의 딸을 역사교과서에서 빼고
교과서를 집필한 역사학자 들이 진정한 역사 학자들인가?
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. 이화학당을 다녔다는 이유로^!^친일파들이 세운 학교이므로 유관순 열사를
과도하게 미화해서 친일파가 만든 인물이라고 빼다니~!!서대문 형무소에 가면 그 모든것이 역사적 사
실임이 입증 되는대도... 역사 교과서에 빼버리다니 이것이 왜곡이다. 정말 좌파학자들은 무섭다 ^.0.^
출처 : 조선일보 8월28일 A6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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